[기고] 자기 자신에게서 바름을 구한다

김희철 전 성균관청년유도회중앙회 부회장

2024-07-19     권기상 기자
▲김희철 전 성균관청년유도회중앙회 부회장.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읽었던 책 한 문장이 뇌리에 늘 남아있다. ‘자기 자신에게서 바름을 구한다’. 

권력이 민심을 억압하는 격동의 정치가 계속되고 소위 ‘출세’가 인생의 최대 덕목으로 자리 잡은 가치 혼돈의 시대에 무슨 뜬구름 같은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 하던 마음 한구석에 나도 모르게 무척 예리하게 각인됐던 모양이다.

그 뜬금없는 찐 고구마 같은 한마디는 부정한 세상을 원망하며 무수한 모순을 지적하고 공격하기 바빴던 그 시절 나에게 지극한 근본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큰 울림을 주었는데 옛 선현들은 그 가르침을 ‘활’에서 구하고 있었다.

예기 사의편에 등장하는 사구정제기(射求正諸己) ‘활쏘기는 자기 자신에게서 바른 것을 구한다’는 문장에 이끌려 어린 애들과 함께 활터를 여러번 찾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입문을 못하다 애들이 장성하고 여유가 조금 생긴 요즘 활쏘기 매력에 빠져있다.

찾아간 국궁장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첫눈에 들어온 ‘궁도 9계훈’이 먼저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것으로 알려진 9계훈은 유학의 가르침 그대로였다.

인애덕행(仁愛德行), 성실겸손(誠實謙遜), 자중절조(自重節操), 예의엄수(禮儀嚴守), 염직과감(廉直果敢), 습사무언(習射無言), 정심정기(正心正己), 불원승자(不怨勝者), 막만타궁(莫彎他弓). 항상 몸과 마음을 바로하고 청렴 겸손하며 예를 숭상하고 절조있는 행동으로 덕을 실천하는 선비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특히 활은 논어 팔일편에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필야사호(必也射乎), 읍양이승(揖讓而升), 하이음(下而飮), 기쟁야군자(其爭也君子)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으나, 반드시 해야 한다면 활쏘기로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갔다가 활을 쏜 뒤에는 사대에서 내려와 술을 마시니, 그 다툼이 군자답다고 하고 예기 사의편에 사자소이 관성덕야(射者所以 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일이라 했으니 최고의 칭송이 아닐 수 없다.

또 활 쏘는 사람의 기본 자세로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을 강조하는데 선찰지형(先察地形) 후관풍세(後觀風勢) 먼저 지형을 살핀 다음 바람의 흐름을 보고 비정비팔(非丁非八) 흉허복실(胸虛腹實) 발의 위치는 정(丁)자도 팔(八)자도 아니며, 가슴은 비우고 단전을 채운다. 

▲활 쏘는 사람.(사진 김희철 제공)

전추태산(前推泰山) 후악호미(後握虎尾), 활을 잡은 줌손은 태산을 밀듯이 하고, 화살을 메긴 현을 잡은 깍지 손은 범의 꼬리를 당기듯이 하며, 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제기(反求諸己), 쏘아서 맞지 않으면, 먼저 자신을 되돌아본다. 특히 마지막 두 구절은 활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예기 사의편에 사자, 인지도야. 사구정제기, 기정이후발(射者, 仁之道也. 射求正諸己, 己正而後發) 활쏘기는 인(仁)의 길이다. 그것은 자기에게서 바름을 구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기 몸이 바르게 된 후에 화살이 나가야 한다. 

발이부중, 즉부노승기자, 반구제기이이의(發而不中, 則不怒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중용에도 사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 활 쏜다고 하는 것은 군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 실저정곡, 반구제기신(失諸正鵠, 反求諸其身), 화살이 정곡을 벗어나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강조했다.

즉 활 쏘기는 자신의 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수신(修身)을 위한 엄중한 행위였던 것이다. 사냥의 도구로 또는 전쟁에 사용되는 병장기 정도로 알아왔던 활이 어떠한 과정에서 인간의 내적 수양을 위한 동반자로, 자기완성의 도구로 인식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가르침과 높은 이해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진 활은 발전을 거듭하여 고구려벽화에 각궁을 사용해 사냥을 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우리 민족과 깊은 연원이 있다.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활쏘는 사람 그림 3점, 고대 우리 민족이 사용하던 맥궁(貊弓)이 명성을 떨치고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 일컬었는데 이(夷)가 큰 대(大)와 활 궁(弓)의 합자인 것을 보면 우리의 국궁은 단연 세계 최고의 기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활터 전경.(사진 김희철 제공)

활은 목궁, 죽궁, 철궁 등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며 각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활의 성능 또한 다르다. 우리의 각궁은 대나무, 물소뿔, 소힘줄, 뽕나무 등 7가지 재료를 민어부레 풀로 붙여 만든 단궁이자 복합궁으로 타 활에 비해 가장 우수한 위력을 자랑하고 있다.

각궁은 미열로 은근히 달구어 현을 양 고자에 걸어 올리며 현을 걸고 나서도 활의 오금자리를 양 손과 발로 조금씩 눌러 풀어주고 윗장과 아랫장이 제 기능을 하도록 균형을 잡아가는 섬세하고도 지난한 과정 거쳐 드디어 사대에 나가 활을 낸다.

각궁은 습기와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아 매우 까다롭지만 요즘은 카본 재질의 활이 나와 손쉽게 활을 올리고 날씨에 구애 없이 활을 쏠 수 있다. 국궁은 1단부터 9단까지 공인되는데 1단부터 4단까지는 카본궁으로 승단할 수 있고 5단부터는 각궁으로만 참여할 수 있으며 5단 이상을 ‘명궁’이라 부른다.

활터에서는 예(禮)에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례후궁(先禮後弓) 예를 다한 다음 활을 쏜다. 사대에 나가서는 윗사람이 가장 왼쪽에 서서 먼저 발시를 하고 그 다음사람이 순서대로 모두 5발을 낸 다음 마지막 궁사의 발시가 끝나면 함께 과녁으로 나가 화살을 찾아 사대로 돌아온다. 이를 동진동퇴(同進同退)라 한다.

활터를 찾아 처음 사대에 나가면 발시 하기 전 반드시 “활을 배우겠습니다”라고 과녁을 향해 머리숙여 예를 표하면 함께 사대에 선 사람들은 “관중하세요”하고 답을 하는데 이는 예를 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활을 통해 심신수양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활은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논어 팔일편에 공자는 사불주피, 위력불동과, 고지도야(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활쏘기에서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는 것은 사람마다 힘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이 예부터 활을 쏘는 도라고 했다. 즉 자신에게 맞는 활쏘기로 덕행을 살피고 꾸준히 연마하여 관중에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만큼 누구나 도전해 볼만 하다.

필자는 활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이 생업에 종사하거나 혹은 인간사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갈등과 경쟁, 무수한 번뇌들은 활을 잡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오로지 활을 잡은 자신과 145m 앞에 놓인 과녁, 가끔 스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요즘 활을 내면서 중용(中庸)의 의미에 대해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중용은 가운데를 기계적으로 이르는 것과는 다르다. 사특함이 세상에 난무해도 옳고 바름을 끝내 견지해 내는 매우 역동적인 의미임을 되새기면 사자관덕(射者觀德)이라 할 때 그 덕(德)은 중용의 덕이 아닐까 짐작한다.

활을 잡은 줌손과 현을 잡은 깍지손이 무심한 가운데 화살의 길이만큼 멀어질 때 비로소 만작이 이루어진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결코 몸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무아지경에 이를 때 그 속에 중용의 덕이 자리하며 발시 후 관중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의 결과일 뿐이다.

옛 선비들은 학문에 매진하다 가끔 사례(射禮)를 즐기곤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향사례(鄕射禮) 역시 그 의례 중 하나이며 그 내면에는 자기 성찰을 통한 유학적 인간완성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구성하고 있는 만큼 추로지향 안동시민이라면, 유학의 가르침을 배우는 유자라면 한번쯤 가까이 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