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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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의 단상
  • 권기상 기자
  • 승인 2023.03.0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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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잇다 박정열 대표
▲데일리안 화면 캡처.
▲데일리안 화면 캡처.
▲(주)잇다 박정열 대표
▲(주)잇다 박정열 대표

3월 1일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를 보며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 올랐다. 대통령의 대일 인식이 심히 걱정되고,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돼서다. 기념사의 주요 골자는 위 기사에서 인용한 것 처럼 ‘일본은 보편가치 공유하는 파트너’이며 ‘식민지배 트라우마를 떨치고’, ‘수평적이고 대등한 한일관계’를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먼저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란 구절을 들여다보면 경제적 관점에서 일본은 빠질 수 없는 파트너인 것은 분명하다. 한일관계의 최종 종착지는 경제적 파트너가 되어야 하므로 해당 발언은 인정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국가 간의 교류가 없을 수 없고, 일본 역시 수 많은 경제협력국 중에 한 국가임에 틀림 없다. 

보편가치를 공유한다는 말을 무슨 의도로 사용한 것인지 모호하긴 하지만, 아마도 경제적 협력을 염두한 포괄적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 문장 자체에 특별한 반감은 없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은 다른 수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우리의 파트너가 되어야 함은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식민지배 트라우마’란 단어는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 국민이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정신병자들이란 말인가? 아픈 과거로 인한 반일감정을 트라우마로 규정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트라우마라는 의학적 용어가 사회 전반에 널리 통용되긴 하지만,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국가 간의 외교적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국경일 기념사에 국민을 대상으로 ‘트라우마’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상당히 무례하고 과격한 표현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국민들이 식민지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다 보니 일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도 거슬렸던가? 그래서 국민을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처럼 표현한 것인가?

아무리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라도 국민에 대해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해선 안된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 아니 더 정확히는 이 기념사를 작성해 준 대통령실이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가늠할 수 있다.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정신병자인 것이다.      

또한, ‘대등한 수평적 관계’란 표현도 살펴보자. 대등하고 말고도 없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세계 10위권 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식민지배를 겪고, 전쟁의 고통도 감내하며, 온 국민이 잘 살아보자며 피땀 흘려 만든 위대한 나라다. 한 맺힌 과거를 뒤로 한 채, 끊임없이 앞만 바라보며 세계가 깜짝 놀랄 성과를 이룩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굳이 일본과 비교하여 대등한 관계라 칭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하위국가였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즉, 식민지배 트라우마를 겪던 하위국가였다가 이제는 대등해졌다는 것 아닌가? 아니, 이미 우리는 여러 지표를 통해 일본을 능가한지가 오래 되었다. 

이 시점에서 대등함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자국을 다른 국가의 하위국가로 전락시키고 국민을 모독하며, 이제는 대등해 졌으니 잘해 보자고 한다. 대통령의 자격이 의심되는 굉장히 모욕적인 발언이다.  

일제 치하의 역사는 뼈아픈 우리의 역사이자 사실 그 자체이다. 그동안 일본은 2차대전 전범 국가인 독일이 피해국인 유럽 국가들에게 했던 것처럼, 반복적이면서도 진정 어린 사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와 냉전체제로 재편된 국제질서의 그늘에 숨어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국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왔다.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우린 단 한 번도 용서할 기회가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용서를 하는 것인가? 누구 마음대로 강제징용 피해보상을 합의하는 것인가? 시간도 오래 지났으니 대충 가자며 얼버무리고 넘어갈 문제인가?

국민을 피해의식 가득한 환자 취급하며 당연히 거쳐야 할 국가 자존의 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대통령. 있지도 않은 트라우마를 당신이 떨쳐내라면 국민들은 억지로 트라우마를 만들어서라도 떨쳐내야 하는가?

경제적 관점에서 일본이 한국의 파트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파트너가 되고 말고의 여부는 우리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진심의 사과를 하며 ‘과거엔 우리가 잘못했으니 용서를 해다오. 이제 대등한 파트너로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며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미래관계를 제안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린 그제서야 '용서' 와 '파트너' 라는 미래의 과업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순서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사과가 먼저다’라는 지난 정부의 입장을 그저 똥고집 정도로만 인식하며 배척할 일이 아니다. 경제보복을 자행하던 일본 정부에 온 국민이 ‘No Japan’ 캠페인에 동참한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쩔쩔매며 끌려다니기 힘드니, 국민적 동의도 얻지 않고 일방적인 태도로 대등한 파트너로 함께 가자는 논리는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을뿐더러 국민을 식민지배 트라우마 환자로 규정하기까지 한 이번 기념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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