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고향 등지고 이국만리 만주벌판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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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고향 등지고 이국만리 만주벌판으로 떠나다
  • 안동뉴스편집부
  • 승인 2015.02.2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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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조국광복을 위한 도만(渡滿) 구국행렬, 28일 안동서 첫 재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망명길에 오른 항일 도만(渡滿)행렬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28일 100여년 만에 처음 재현된다.

   
 
안동문화원(원장 이재춘)이 주최하고 (사)문화동인(대표 원유록)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28일 오후 4시부터 안동시 정상동 예미정(禮味亭) 별채에서 열린다.

행사는 ‘신흥무관학교 최후의 1인’으로 기록된 항일순국지사 추산 권기일(權奇鎰 1886~1920) 선생의 가족들이 올해로 만 103년 전인 1912년 3월 2일 대대로 이어오던 종가집을 버리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역사적인 도만에 나선 당시의 처절했던 모습을 그대로 복원, 퍼포먼스 형태로 재현하게 된다.

이번 행사는 먼저 추산 권기일 선생을 추념하는 시 낭송과 신흥무관학교 교가 제창을 시작으로, 추산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회고와 함께, 2부로 추산이 조부인 권헌봉에게 하직 인사를 한 후 노모와 부인, 동생 가족 등 식솔들을 데리고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고향마을을 떠나는 장면을 상황극으로 꾸몄다.

이날 행사에는 정상동 마을주민 200여명과 문화동인 회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원 50명 등 모두 250여명이 참가해 한복 차림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예정이다.

도만 이삿짐은 소달구지 2대에 그릇궤, 반닫이, 삼층장 등 가구, 궤짝과 이불, 가마솥, 돗자리 등 당시 사대부집 가재 도구와 함께 만주에서 새 삶터인 황무지를 일굴 곡괭이, 삽, 쟁기, 호미 등 농삿일에 사용할 농기구로 꾸려졌다.

이 도만 이삿짐을 통해 당시 넉넉한 생활을 해 온 사대부 집안의 종손이 항일투쟁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면서, 대대로 지켜 오던 천석지기 종중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위해 직접 농사도 불사하겠다는 처절한 마음가짐을 엿보여 준다는 것이다.

100여년 전 추산선생 가족들은 구미 해평면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며 삼엄한 일경의 감시를 따돌렸으며, 땅거미가 질 무렵 횃불을 밝히고 소달구지로 안동을 떠나 김천지역에서 열차를 갈아 타고 신의주를 거쳐 만주 서간도지역 통화현 추가가 일원에서 미리 도만한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과 천신만고 끝에 합류한다.

경술국치 당시 안동지방에서는 나라 잃은 의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정순국이 8명이나 있었으며, 그 이후 2012년까지 3년 동안 백하 김대락(1845-1915)을 시작으로 일송 김동삼(1878-1932), 동산 류인식(1865-1928) 등 명문거족들은 물론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 까지 항일 투쟁의 도만행렬이 약 60여 차례나 있었다. 당시 서간도 지역에 거주하게 된 안동사람들은 100여 가구에 1천여 명에 이르었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추산 선생의 손자 대곡문중 종손 권대용(67)씨는 “100년 전 대대로 살던 종가집을 비우고 이국만리 만주 독립운동에 나선 할아버지의 기막힌 심정이 그대로 와 닿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자라나는 차세대들이 악독했던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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