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 백세(百世)의 사표(師表), 위대한 스승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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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 백세(百世)의 사표(師表), 위대한 스승을 기리다
  • 안동뉴스편집부
  • 승인 2015.05.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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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도산별과 기념행사

1792년 정조 임금께서 퇴계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에 친히 지은 제문을 내려 제사를 지내고, 영남유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과거시험인 별과를 만여명의 영남유생들이 도산서원에서 퇴계 이황의 학덕을 추모하고 시험을 실시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도산별과, 정조 임금의 뜻을 계승하여 유교문화의 원형을 복원고, 영남 유일의 별과인 도산별과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여 해마다 3월 25일(음력)에 도산별과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1792년 음력 3월, 정조 임금은 규장각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1752~1820)를 도산서원에 파견하여 몸소 지은 제문祭文으로 제사를 지내고, 이튿날 영남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보게 하는 특별한 은전을 내렸다.

정조 임금은 각신 이만수를 안동으로 보내기에 앞서 김해와 경주로 보냈다. 역대 시조의 능묘陵廟에 제사를 올림으로써 전대 왕조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후 이만수는 옥산서원의 제사에 참석하여 어제문을 올리고, 다시 도산서원의 제사에 어제문을 올렸다.

그리고 도산서원에서 별과를 열어 지방의 인재를 응집시켰다. 이러한 이만수의 일련의 행보에는 유교질서의 통합을 위해 구심점을 찾으려 했던 정조 임금의 깊은 뜻이 있었다. 그 구심점에는 참 선비[眞儒] 퇴계 이황이 있었다.

이번 도산별과는 본격적인 백일장에 앞서 그 옛날 정조 임금의 뜻을 받들어 참 선비, 곧 시대의 큰 스승을 마음속으로 회상해 보는 재현행사로부터 시작된다.

223년전 정조 임금이 직접 지은 치제문致祭文을 도산서원에 내려 보낸다.

정조 임금의 명을 받은 규장각 관원 이만수李晩秀와 장용위壯勇衛(호위병)가 치제문을 전달하면, 한국국학진흥원장과 도산서원의 별유사 및 참석한 유생들은 퇴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로 가서 고유례를 올리는 의식을 수행한다.

고유례는 행사 시작 전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에 올라가 고하는 전통 의례이다. 이 고유례가 끝나면 각신 이만수와 장용위 등의 파발행렬이 안동시장에게 정조 임금이 직접 지은 시제詩題를 전달하는 장면이 재현된다.

그런 다음 시장이 시제를 게시하고 압운을 공개한 뒤, 이후 북소리와 함께 참석한 200여명(일반부 150명, 학생부 50명)의 전국 한시인漢詩人을 대상으로 백일장이 실시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문후속세대 양성 차원에서 학생부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도산별과의 재현행사는 전국 어느 한시백일장에서 볼 수 없는 역사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도산별과가 단순히 한시 동호인들이 모여 자신의 실력을 겨루는 데만 초점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유교문화의 원형 재현을 통해 당시 퇴계를 참 선비로 추앙했던 정조 임금의 뜻을 계승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백세의 사표, 위대한 스승을 기리다

특히 이번 기념행사의 주제는 ‘퇴계, 고인古人을 기리다’이며, 시제詩題는 그에 걸맞게 ‘아사고인我思古人’으로 정하였다.

즉, ‘아사고인’은 퇴계가 자신의 70평생을 관조, 통찰하면서 직접 쓴 96자로 된 묘비명의 한 구절로, 퇴계가 평생토록 성현의 길을 생각하고 따르려 했던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고인’은 요순우탕과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의 성현으로, 퇴계가 마음 깊이 존모했던 스승이기도 하다.

퇴계는 정치적 삶을 청산하고 산수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도산에 터를 정해 서당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끊임없이 고인이 간 길을 따라 학문을 강론하고 실천하여 종국에는 정조 임금이 ‘참 선비[眞儒]’ 아니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 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간師弟間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정의情誼가 점점 엷어져 가고 있다. 심지어 교육 현장에서 스승과 제자간에 있을 수 없는 험악한 사건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 우리들이 도산별과를 통해 그 옛날, 퇴계가 큰 스승으로 삼았던 고인을 흠모하던 정신과 정조 임금이 퇴계의 학덕을 존모하던 그 마음을 뒤돌아보고, 나아가 자신의 현재적 삶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번 행사의 주제가 우리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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