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의 고달픔을 잊고,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2조 저전동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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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의 고달픔을 잊고,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2조 저전동농요
  • 안동뉴스 편집부
  • 승인 2016.10.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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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저전동농요보존회에서는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2호인 ‘저전동농요’를 10월 4일(화) 오후 3시에 탈춤공원 경연무대에서 시연한다.

저전리는 속칭 모시밭이라고도 하며 천등산 밑 구릉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모시를 경작하는 밭이 많고, 모시를 짜는 아낙네 또한 많아서 모시밭, 저전촌(苧田村)으로 영가지에 실리기를 ‘저전촌은 부성(府城)에서 25리 거리에 있으며, 천등산 기세가 내려와 양쪽의 시내에서 멈추었다. 정사신(鄭士信)이 터 잡고 살았다.’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마을은 한양조씨의 집성촌으로 통계에 따르면 200여 가구 중 180가구가 한양조씨로 되어 있다. 저전리의 한양조씨는 기묘사화가 있고 정암 조광조 선생의 일파로 몰려 남쪽으로 내려온 한양조씨의 일문(一門)이다. 천등산 밑에 다래넝쿨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고 하며, 그렇게 숨어살다시피 세월을 보내면서 삶이 고달프고 한이 맺힌 탓인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애달픈 사연이 깃든 민요가 많이 남아 있다.
1967년 성균관대학교 조사단이 안동지방의 민요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안동지방 50여 개 마을에서 110편의 민요를 채록했는데, 그중 저전리에서 32편이 채집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이 마을이 민요를 부르면서 생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의 민요는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달개소리, 망깨소리, 도리깨소리, 파래(논물을 댈 때 물을 퍼 넣는 도구)소리 등 주로 노동요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럿이 힘을 모아 농사일을 할 때 소리를 맞추어 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흥을 돋우어 일하는 괴로움을 잊고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불려지는, 곧 일하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저전동 민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개 우리 민요의 특성은 해학성이 풍부해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낙천성이 배어있고, 순종성, 즉 아내는 남편에게, 백성은 임금에게, 아이는 어른에게 순종하는 질서와 양보의 미풍이 민요에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저전리 농요도 때로는 애달프게, 때로는 신명나게, 선소리가 메기면 여러 사람이 후창하는 전통농요의 특성을 따르고 있다.

1920년 이 마을에서 태어난 조차기 옹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노래 재질로 인해 농사일이나 각종 놀이판, 공사장 등에서 선소리꾼으로 나섰는데, 그 창법이 독특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이 일게 하고, 가슴이 뭉클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을 통해 구전(口傳)되어온 저전동농요는 197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경상북도 대표로 출연해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조차기 옹은 특별상인 개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저전동농요가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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