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폭력’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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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폭력’은 무엇일까 ?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2.07.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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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다. 소위 ‘석궁 사건’의 쟁점이나 편파적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구노회 소식지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더 잘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니 벌거벗은 대우차 노동자들이 경찰에 얻어터지던 2001년 초의 동영상이 나왔다. 감회가 새로웠다.

난 그때 장안동 공안 분실에 있었다. 고상한 사상 때문은 아니었고 1750명이라는 무식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곤봉으로 후려치러 우르르 몰려오는 전경들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가 어설프게 현장에서 잡혔던 거였다. 때마침 폭력시위를 엄단하라는 노벨상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하달되자 신문에 내 신상도 털리고 결국 공안분실 손님으로 초대받고 말았다.

‘협박, 모욕, 공갈, 약취, 손과 도구에 의한 폭행, 감금, 성적인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말과 행동(2012년 1월 학교 현장에서 실시된 <학교폭력 실태 전수 조사 설문지>에서 인용)’이 수반된 수사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대우차 폭력진압 동영상이 뉴스에 보도됐다.

내 과거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따로 있다. 그때 접견 온 아버지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한테는 폭력을 쓰지 말라고 하면서 너는 어떻게 폭력을 쓸 수 있냐?” 물론 내 목적은 경찰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한 거였고,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게 몰려오는 경찰들의 몸통이 아닌 전방 땅바닥에 병을 던졌지만, 그게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들의 폭력과 나의 폭력은 다른 것일까? 정당한 폭력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뭐, 아직 해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석 달 전엔가, 한 경찰서장이 괜히 정복 차림으로 시위대 속에 들어갔다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언론들은 짜고 친 듯 “경찰서장이 얻어맞는 나라”라는 제목을 머리에 달고 여론을 이끌었다. 그때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잠시 인용한다.

“우리는 거의 언제나, 본질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선정성·폭력성에 집중한다.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은 그런 우리의 속성을 활용한다. 20년 전에 강경대를 살인한 정권은 계란·밀가루 던진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떠들고 유서 대필을 조작했다.

10년 전에 노동자 몇 천 명을 정리해고한 정권은, 맥락을 다 자른 “전경을 죽지 않을 만큼만 패라”는 변호사의 말과, 존재하지도 않는 ‘변종 화염병’의 폭발력을 대대적으로 떠들었다. 그렇게 했던 것은 바로 그런 선전이 우리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를 뒤집고 정권에 불리한 국면이 조성되었던 것도 결국은 겉으로 드러난 선정성·폭력성 덕이었다. 대우차 노동자들이 벌거벗은채로 경찰에게 얻어터지지 않았다면,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시위자로만 각인되었을 것이다. 농민 전용철이 죽지 않았다면, 상경해 폭력시위를 일삼는 농민들로만 각인되었을 것이다.

“요즘은 다들 카메라가 있으니 보이지 않게 때려라”는 경찰 상관의 말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여대생이 머리를 군홧발에 짓밟히고 버스 아래로 급하게 숨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았다면, 미국산 쇠고기 관련 촛불시위는 시작은 평화로웠으나 결국 변질되고 만 폭력시위로만 각인되었을 것이다. 용산 남일당의 여섯 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분들은 건물 위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행인의 안전을 위협했던 도심테러자로만 각인되었을 것이다. 매우 미안하고 슬픈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 알량한 사고 체계다.

시위의 폭력성에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든, 경찰의 폭력성에 핏대를 올리는 사람이든, 그 폭력 너머의 본질에 대해 핏대를 올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폭력’이 없이는 핏대를 올리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폭력’ 외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우리들이 더 폭력적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눈과 귀를 교묘하게 ‘폭력’에 붙잡아 매어 놓는 그 누군가가 더 폭력적인 것이 아닐까?

종로경찰서장이 반FTA 시위대 속에 들어갔다가 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걸 보며, 다시 한 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다.”

2.
지난 2월 6일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들여다보면 ‘폭력’ 그 자체에만 핏대를 올리고 있는 관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폭력 학생들은 나쁜 놈들이니 교사가 경찰에 바로 신고해라, 그러지 않으면 폭력을 은폐한 것으로 간주해서 금품수수나 성폭력 범죄를 범했을 때의 수준으로 징계하겠단다.

교사는 이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제자를 지도하지 말고 신고해야 한다. 다양한 처벌 및 선도 조처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백미는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입력하라는 것이다.

이제 교사는 제자의 진학과 취업에 따라다닐 기록물에 이 학생이 폭력 학생이었다는 주홍글씨를 남겨야 한다. 정부가 만들겠다는 “따돌림 없는 교실”은 다른 일방에 대한 완벽한 ‘따돌림’으로 완성되는 듯하다.

책임과 처벌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게다가 자살한 피해 학생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이다. 학생의 폭력에 핏대를 올리는 우리는, 그 폭력 너머의 본질에 대해서 핏대를 올리고 있는 것일까? ‘폭력’ 외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우리들이 더 폭력적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눈과 귀를 교묘하게 ‘폭력’에 붙잡아 매어 놓는 그 누군가가 더 폭력적인 것이 아닐까?

왜 ‘학생폭력’이라 부르지 않고 ‘학교폭력’이라고 부르는가? 그 과정에서 정작 ‘학교의 폭력’은 은폐된다. 학교권력은 학교 구성원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교실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가두어놓고 모욕하고 협박하고 강제로 공부시키고 머리를 밀고 소지품을 빼앗으며 핸드폰 내용을 들여다보고 손이나 도구로 때린다(역시 2012년 1월 학교 현장에서 실시된 <학교폭력 실태 전수 조사 설문지>에서 인용). 더 높은 차원에서 작동하는 ‘교육의 폭력’은 어떤가. 일제고사로 부여되는 순위와 등급, 대학서열에 의한 입시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을 거침없이 조롱하고 비하한다.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이를 방조하거나 적극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자살하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의 폭력 학생들은 이러한 ‘학교의 폭력’ ‘교육의 폭력’의 피해자다. 그 피해에 대한 보상 또는 저항의 수단으로 또래 친구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의 질서에 짓눌린 개인·집단이 다른 개인·집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알고 그 과정에서 통용되는 논리를 습득하기 때문이다.

매우 슬프게도, 현실에서 항상 ‘폭력’은 승리한다. 우리는 그 ‘폭력’의 기반 위에서 살아간다. 한전이 원전이나 송전탑을 건설하며 자행하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폭력은, 전기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우리들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경남 밀양에서 한 노인이 분신 자결을 한 다음에야 이런 불편한 사실을 환기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대중의 눈과 귀를 다른 이의 ‘폭력’에 붙잡아 매어 놓는다. 대추리 들판을, 구럼비 해변을 지키려는 주민들을 졸지에 중대 공안사범으로 몰아가는 그들의 놀라운 기술. 엄정 대처하여 발본색원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일제고사 강요하고 학교 서열화 조장하면서 학생인권조례는 무력화시키려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쌍용차 진압이 자랑스러운 업적 1위”라던 조현오 경찰청장이,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학교폭력 근절”을 외친다는 것. 이런 역설적인 사회 현실을 그대로 묵인한 채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폭력이다.

그리고 밀양의 분신 열사, 용산참사의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 세상의 힘없는 것들, 심지어는 실수로 밟은 곤충 한 마리, 풀 한 포기의 아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임을 믿는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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