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木조木 보호수 - 4] 600년 세거지 '가일마을 회화나무'
상태바
[요木조木 보호수 - 4] 600년 세거지 '가일마을 회화나무'
  • 권기상 기자
  • 승인 2023.07.21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들, 매년 정월 15일 마을 뒤 정산 중턱 서낭당에서 당제 올려

지난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주목을 받았던 창원 북부리 팽나무로 인해 마을 보호수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마을의 보호수는 역사·문화적 요소가 응집된 문화유산이자 인문자원으로 정신적 휴식처이면서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한 마을의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담겨 있는 보호수의 스토리를 연재해 안동의 새로운 콘텐츠로써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입구 보호수 11-14-5-12-2호 회화나무.(사진 권기상 기자)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입구 보호수 11-14-5-12-2호 회화나무.(사진 권기상 기자)

- 보호수 지정번호 : 11-14-5-12-2
- 보호수 지정일자 : 1982년 10월 26일
- 나무 종류 : 회화나무
- 수령 : 300년
- 나무 높이 : 13m
- 둘레 : 1.5m
- 주소 :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650

▲동공이 생긴 자리에 외과수술을 하고 용그림이 그려진 회화나무 줄기.(사진 권기상 기자)
▲동공이 생긴 자리에 외과수술을 하고 용그림이 그려진 회화나무 줄기.(사진 권기상 기자)

안동 시내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20km쯤 가면 안동권씨 복야공파의 한 갈래가 600여년을 세거지로 있는 풍천면 가곡리가 있다. 마을 이름이 가일이라고도 일컫는데 옛 이름인 가일과 지곡에서 한 자씩 따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지곡은 마을 뒤 정산의 골짜기 모습이 나뭇가지가 뻗은 모습과 닮아 있고, 권은 가지가 많아야 번성한다는 뜻에서 가지 지자를 썼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인 가곡, 가일은 마을 앞 풍천들 너머로 아침 해가 솟아 오르는 장관이 아름답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은 가일마을로 더 많이 알려져 가일전통문화마을로 불려지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항일투사인 권오설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여러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 운동가를 배출해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의 거점으로도 크게 두드러졌다. 

들판 주변을 따라 이어진 지방도로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가일못이 펼쳐져 있다. 못 둑 언덕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용 문양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령이 200년, 나무 높이 11미터, 가슴높이의 둘레가 5.2미터였다. 동네 정자나무이기도 한 회화나무 아래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더운 여름 땀을 식히기에 좋은 장소이며, 옛날에는 마을 학동들이 글공부를 했다고 해서 '학수'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용그림이 그려진 회화나무 줄기.(사진 권기상 기자)
▲용그림이 그려진 회화나무 줄기.(사진 권기상 기자)

오래된 나무 줄기 상당부분에는 동공이 생겨 썩은 부분을 도려낸 외과수술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시멘트로 땜질된 부분은 캔버스로 활용돼 용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주변 경관과 어울려 노거수의 멋을 더해 주고 있다.

그림에 용은 가일마을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전설에는 마을 뒷산인 정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두 산줄기가 마치 용이 두 마리 새끼를 보듬고 젖을 먹이고 있는 형국이어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하는 내용에서다.

마을 주민들은 다른 마을과 달리 당나무에서 동제를 올리지 않고 정산 중턱에 동신을 모신 서낭당에서 당제를
지냈다. 당제는 매년 정월 15일에 지냈으며 지난 1972년까지 지속되다가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면서 당제를 지내지 않은 것으로 기록을 볼 수 있다.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보호수 11-14-5-12-1호 버나무.(사진 권기상 기자)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에 있는 보호수 11-14-5-12-1호 버나무.(사진 권기상 기자)

그리고 회화나무에서 몇 십미터 조금 더 들어가면 매우 크고 근사한 왕버들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보호수 11-14-5-12-1호인 가곡리 버나무이다. 이 왕버들은 입구의 회화나무와 같은 날짜에 보호수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200년에 높이 12m, 나무둘레 5.7m로 기록돼 있다.

이 왕버들은 회화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에서 아름다운 저수지와 더불어 전통한옥을 간직한 지난 수백 년의 마을 이야기를 지키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