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산회(散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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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듣다 - 산회(散懷)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3.05.0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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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어도 추운, 참으로 이상한 봄날씨를 겪으며 녹차 잎이 드디어 자라났다.
이곳 사람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던 녹차 잎이 나오자 녹차를 만들기 위한 작업들로 갑자기 바빠졌다. 필자도 하동에 온지 몇 년이 지나도록 녹차 한 번 따보지 않았는데 올해 지인의 녹차 밭으로 가서 녹차 잎을 처음 따 보았다.
작업 모자를 단단히 준비해 가고 녹차 따는 앞치마도 챙겨서, 보기엔 제법 일꾼 같은 복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복장과는 달리 처음엔 어떤 잎을 따야 되는지도 몰라 이 잎을 따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다가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잎 하나를 따는데도 손이 서툴고 눈에는 잎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조금은 익숙해지고 적당한 크기의 잎을 고르는 눈도 생기고 가볍게 톡 따는 소리도 낼 정도로 손에 익어갔다.
녹차는 딸 때 상처가 최대한 나지 않게 따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딴 직후부터 상처 부위에서 발효가 이미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차의 맛도 따는 사람, 따는 사람의 심신의 건강상태, 덖는 온도, 시간, 덖는 사람의 상태, 덖는 회수 등등 수없이 많은 조건들로 차 맛은 천차만별이 된다고 한다.
그저 별 감사함 없이 마시는 녹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 엄청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은 정성인 것 같았다.
그래서 필자도 녹차 잎을 딸 때 최대한 심신의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한 나무에서 많은 잎을 따는 고수들과는 달리 이 나무 저 나무를 전전하며 앉았다 섰다 하니 허리도 아프고 하기 싫은 생각이 들더니 조금씩 익숙해지고 차 잎의 향과 손에 닿는 느낌에 매료되면서 점점 차 따는 작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활 속에서 머리 아픈 일들, 감정, 고민, 해결해야 하는 일들에서 점점 나의 의식은 멀어지고 오로지 찻잎의 향과 아주 여린 연둣빛 잎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이 단순하게 보이는 노동이 나의 사고도 단순하고 푸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산회(散懷).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들을 흩어버린다. 
우리는 참 머리 속에 많은 것들을 담고 산다. 그리고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처럼 참 수많은 감정을 일으키며 그 감정에 헤매기 까지 하면서 살아간다.
사실 육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상황과 패턴은 바뀌어도 늘 반복해서 그런 조건에 놓일 것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그러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으니 말이다.

▲ 손지아
그런데 오로지 고달픈 숙제만 갖고 왔다면 삶은 참 더더욱 고단하기만 할 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순간순간은 그런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알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이 맑아지는 차를 마시고 그 차를 만드는 과정 또한 그런 방법의 연장이니 말이다.
굳이 내손으로 차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오늘은 잎으로 우려낸 향기로운 녹차 한 잔을 마시며 머리와 가슴에 품고 있는 모든 것을 흩어 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
물이 끓는 소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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