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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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듣다 - 이야기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2.09.06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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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날고 있는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뿐. 발톱을 감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너의 아름다움에 두 손 모으고 경건해 지는 것일 뿐.
내 너를 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방문으로 네가 훗날 열매 맺을 것을 일치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향기에 이끌리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있는 너의 본질에 난 더 관심이 많다.
난 널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떠돌아다니는 불안함을 알기 때문이다. 너를 연민하는 것도 아니다. 내 느리고 긴긴 삶보다 너의 역동적이고 찰나 같은 삶이 네 영혼을 더 성숙시켜주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종종 많은 사물을 대할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준을 적용한다. 그리고 상대의 감정 까지도 미루어 판단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오해와 대립이 생긴다.
많은 동물을 바라보고 식물을 대하면서도 그 객관적이지 않은 잣대로 그들을 본질과는 다르게 이리저리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들을 모르지 않는가.
예전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보면서 새가 단순히 먹이를 위해서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위해 날 수 있다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지금 창가를 가로지르며 나르는 새들도 어쩌면 먹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충실한 삶을 완성시켜나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위의 작품은 사실 그러한 관점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듣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 서로의 대화를 통해 엿보기로 한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영혼의 성숙, 즉 진화를 위해 노력하듯 주위의 모든 생명체들도 그들 영혼의 성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은 대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으며 필요한 물질을 최소한 추구하고 부를 축재하지도 않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소박하다.
인간처럼 죽어서도 땅을 차지하며 좋은 곳에 묻히려고 명당을 찾지도 않고 그저 다른 생명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며 비바람에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 비움과 나눔을 실천한다.
우리가 진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
▲ 손지아
너무 비약적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그들 삶의 사이클이 지구에 해가 되지 않고 순리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현대인의 삶의 사이클이 과연 자연에, 지구에 해가 되지 않고 순리적으로 흘러가며 순환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할 자신이 나는 없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온 삶의 패턴만 보더라도 그러하니 말이다.
그런 시행착오를 덜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더욱 자연을 가까이 하고 그들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사랑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먼저니까 말이다.
오늘도 상쾌한 아침,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들의 이야기 바람결에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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