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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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듣다 - 생명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3.02.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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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둥글게 피어 그저 피었다 하겠지만 그 뿌리 얼마나 깊고 강한지 속을 다 알지 못한다. 추운 시절 가늘게 벼린 잎으로 절개를 꺾지 않고 때가 오지 않으면 쉬이 피우지 않는 꽃을 바람결에 이제 펼치려 한다. 조심스레 여는 꽃봉오리. 아, 아름다운 침묵의 소리 잠자는 나를 일깨운다.-


 

어제가 입춘이었다.
비가 온 후지만 훈훈한 바람이 그 안에 봄을 품고 있음을 알게 하는 날씨에 드디어 이 추운 겨울이 가는가 하였다. 늘 그랬듯이 봄이 완전히 왔나 하는 가운데도 또 몇 번의 꽃샘 추위가 있으리라 예상하면서.
자세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이미 땅에는 푸르른 싹들이 여기 저기 나고 있다.
바람이 차고 마음이 아직 얼어붙어 있어도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땅 속의 뿌리들은 벌써 봄을 준비하고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곧 주변의 산과 들, 길가는 순식간에 수많은 신록으로 덮여갈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풀들을 바라보며 모든 추위와 시련, 힘듦도 시간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되어 견딜 수 있는 시절이 온다는 희망을 배운다.
이렇듯 성실하고 착하게 늘 봄을 알려주는 풀들과 달리 좀 더 까다로운 녀석들도 있다.
춘란이 그러하다.
이들은 겨울이 되어도 잎의 푸른빛을 감추지 않는다. 가늘고 길어 여려 보이지만 강하고 굳세게 겨울을 견딘다. 그렇게 매일 봐도 똑같아 보이는 모습으로 있는데 그들은 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환경에 맞게 자신을 준비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들은 봄이 와도 꽃대를 내밀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꽃을 볼 수 없다는 실망을 안겨주면서도 말이다.
봄이 왔다고 아무 고민 없이 꽃을 피우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그들에게서 신중함을 배운다.
자신이 필요할 때, 자신이 준비되어 있을 때, 자신의 자리를 잘 알고서 피는 모습에서 자신 만의 고유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주변에 영향을 많이 받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이 하니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가져야 할 것 같고, 누려야 할 것 같아서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섞인 도시적 삶의 패턴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직업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목적이 나의 목적이 된 현실 속에서 문득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 누구나 한 번은 공허함과 자신의 존재가 빈 껍질 같은 느낌을 받지 않는가.
꽃도 피는 시기가 다양하고 꽃이 먼저 피기도 하며 잎이 먼저 피기도 한다. 어떤 꽃은 평생에 한 번 꽃을 피우기도 하고 그 꽃모양도 다양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부자연스러움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저 자연의 모습일 뿐.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 손지아
나만의 고유한 자리, 생명을 받아서 나온 이유, 나와서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 만의 소명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스스로도 그것을 찾으려 하지만 쉬이 알아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성실하게 푸르름을 알려주는 풀들을 보면서 삶을 살아가는 보편성과, 절망도 시간이 흐르면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는 희망을 배우고, 난초를 보면서 획일화 되지 않고 자신의 때와 역할을 알고 행하는 신중함과 자신만의 소명이 있음을 배운다.
자연과 함께 함으로 내 영혼이 더 이상은 삭막해 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조금씩 조금씩 내가 깨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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