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자족
상태바
바람결에 듣다 - 자족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2.12.07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우고 늘 푸르기가 쉽지 않음을
세상 살아보니 조금은 알겠더라.
달빛 실낱같아도
그 빛에 넌 이렇게 춤을 추는데.

 

내가 머물고 있는 집 뒤에는 대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사시사철 푸르게 서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밤새 대나무의 잎들이 서걱거리며 내는 바람의 흔적을 들어야만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약간의 선잠을 자는 날이면 다음 날 내내 뭔가 마음이 푸근하지 않고 마음 한켠에 서늘함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건 아마 내가 갖고 있는 대나무의 이미지일 것이다.
여름에 사용하던 대나무 자리가 시원하였고 바라볼 때의 이미지가 늘 푸르기에 그러하며 겉은 그리 단단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 감정과 관계, 걱정 등등에서 당당하고 곧게 맞서고 싶고, 혹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면 시원하게 비우고 싶은데 비우지 못하는, 혹은 비운 척은 하는데 마음은 아파 여전히 그 문제를 끼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에 부러움과 함께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는 스스로의 우울이 대나무의 이미지 속에 감정 이입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나무는 봄날 자라기 시작하면 정말 雨後竹筍우후죽순처럼 빨리 자란다.
그러기 까지 그들은 땅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몇 배의 시간을 뿌리를 내리는데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 그들의 뿌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독립된 개체들로 우뚝 서 있으면서도 땅 속에서는 긴밀하게 하나이다. 그 뿌리의 힘으로 그들은 땅 위에 솟아났을 때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고 또 연결된 힘으로 병풍처럼 서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흙이나 바람을 잡아 내가 휩쓸려 내려가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한다.
저 수많은 개체가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남으로 인식하여 분노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저 타인이 결국은 보이지 않는 뿌리로 가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통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 라는 말은 참 수많은 매체로 수없이 들어본 말이나 그건 그냥 말일 뿐 남은 남이었고 경쟁의 대상이었으며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 손지아
그러나 가끔씩은 타인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순간이나마 그 사람들과 공감하기도 한다. 이제는 머리로나마 지구 반대편의 아픔이 전혀 나의 고통과 연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한다. 아주 순간이지만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느끼며 살고는 있다. 그것이 비록 잠깐일지라도.......
대나무를 바라보며 그렇게 땅위로 자라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땅 속에서 다지는 인내를 배우고, 늘 비바람에 당당하게 곧은 굳셈을 배우며, 비워 텅 비어서도 늘 푸르게 웃을 수 있는 청빈을 배운다. 냉정하고 꼿꼿할 것 같지만 서로 서로 연결되어 힘이 되어주는 따뜻함을 배우고 타인도 남이 아니라는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늘 병풍처럼 뒤에 앉아 있는 그는 나에게 또 하나의 스승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