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보니 조금은 알겠더라.
달빛 실낱같아도
그 빛에 넌 이렇게 춤을 추는데.
내가 머물고 있는 집 뒤에는 대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사시사철 푸르게 서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밤새 대나무의 잎들이 서걱거리며 내는 바람의 흔적을 들어야만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약간의 선잠을 자는 날이면 다음 날 내내 뭔가 마음이 푸근하지 않고 마음 한켠에 서늘함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건 아마 내가 갖고 있는 대나무의 이미지일 것이다.
여름에 사용하던 대나무 자리가 시원하였고 바라볼 때의 이미지가 늘 푸르기에 그러하며 겉은 그리 단단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 있는 것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 감정과 관계, 걱정 등등에서 당당하고 곧게 맞서고 싶고, 혹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면 시원하게 비우고 싶은데 비우지 못하는, 혹은 비운 척은 하는데 마음은 아파 여전히 그 문제를 끼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기 때문에 부러움과 함께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는 스스로의 우울이 대나무의 이미지 속에 감정 이입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나무는 봄날 자라기 시작하면 정말 雨後竹筍우후죽순처럼 빨리 자란다.
그러기 까지 그들은 땅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몇 배의 시간을 뿌리를 내리는데 정성과 시간을 들인다. 그들의 뿌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독립된 개체들로 우뚝 서 있으면서도 땅 속에서는 긴밀하게 하나이다. 그 뿌리의 힘으로 그들은 땅 위에 솟아났을 때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고 또 연결된 힘으로 병풍처럼 서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흙이나 바람을 잡아 내가 휩쓸려 내려가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한다.
저 수많은 개체가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내가 남으로 인식하여 분노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저 타인이 결국은 보이지 않는 뿌리로 가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통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 라는 말은 참 수많은 매체로 수없이 들어본 말이나 그건 그냥 말일 뿐 남은 남이었고 경쟁의 대상이었으며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대나무를 바라보며 그렇게 땅위로 자라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땅 속에서 다지는 인내를 배우고, 늘 비바람에 당당하게 곧은 굳셈을 배우며, 비워 텅 비어서도 늘 푸르게 웃을 수 있는 청빈을 배운다. 냉정하고 꼿꼿할 것 같지만 서로 서로 연결되어 힘이 되어주는 따뜻함을 배우고 타인도 남이 아니라는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늘 병풍처럼 뒤에 앉아 있는 그는 나에게 또 하나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