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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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듣다 - 삶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2.07.11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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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아(孫芝娥) 은현

   ▲ 손지아작가
처음 보았지만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당장은 수수하게 눈에 들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정이가고 그 정신과 모양이 낡아서 헤지지 않는 그런 것들을 나는 좋아한다.
사람도, 물건도, 그리고 내가 작업하는 작품들도 그러한 맥락 속에 있다.

6월, 이번 개인전을 통해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방 제작한 것 같지 않은, 심지어는 500년을 숨겨놓았다가 꺼내놓은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내게는 반가운 말이다.
작품 속에는 흙색이나 자연적인 색, 얼룩의 시각적 효과를 통해서 오래된 시간적 흐름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 흐름은 인류의 역사적인 흐름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개인의 역사인 삶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자극하고 지금은 잊고 지내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자아와 본성에 대한 성찰을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소나무를 표현한 작품도 그러하다.

   ▲ 바람결에듣다-삶

소나무가 가진 곡선이 만들어 내는 삶의 질곡, 그래도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작은 가지들, 굽어 있어도 늘 푸르른 잎들, 푸른 잎의 배경에는 아주 오래되고 변색한 듯 한 황토색과 얼룩들이 있다.

그 공간 사이에는 배경 색과 다른 색들로 이루어진 현재 지구의 3차원이 아닌 다른 세계, 지금 보다 좀 더 맑고 투명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상징하는 사각의 패턴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물론 작품은 내가 의도한 바와는 별개로 나의 붓을 떠나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감상자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감흥과 느낌을 주며 또 다른 생명력을 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의도했던 그러한 작품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재료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재료중의 하나로 한지를 선택했는데 한지는 다른 종이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아마 한국인의 근성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해서 그 개성은 남다르다.

한지로 작업을 해보면 다른 작품지에 비해 그리 잘 스며들지는 않는다. 고집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종이가 마르고 나서보면 그 스며듦과 발색은 이미 색과 하나가 되어 칠해진 색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배어나오는 색처럼 느껴진다.

또한 얼마나 질긴지 모른다. 다른 종이들은 쉽사리 찢어지고 또 구겨지고 나면 회복이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한지는 그런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다. 얇아 보인다고 무시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기법을 쓰고 작업하기가 좋다. 여러 기법 중에 바느질 땀이 들어가는데 그건 한지의 이러한 질긴 특성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나는 점점 몰랐던 한지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 그 속성에 많은 것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처음부터 다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과 하나 된다.
둘째, 웬만한 구김에는 끄떡하지 않는다. 질기고 강한 근성, 나는 그것을 배운다.
셋째, 종이를 찢어보면 특정한 방향성을 지니지 않는다. 편중되어 있지 않은 중용의 덕과 주체성이 있다.
넷째, 편안한 흰색을 지닌다. 다른 모든 색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섯째, 먹과 색을 받아들임에 너무 예민하지 않고 허용범위가 넓다. 다가오는 모든 것에 덤덤하고 여유로움을 배운다.

이렇듯 수수하고 눈에 들지 않았던 벗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며 나의 작품 활동도 더욱 성숙하고 넓어지며 여유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개인전6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대구광역시 서예대전 초대작가
◀매일 서예대전 초대작가
◀(사)비움서예포럼 주최 2010국제서예의 동향전 한중일 유망작가 선정
◀제1회 수원서예박물관 청년작가 선정
◀제13회 대구문화예술회관 청년작가 선정
◀광주민주화운동25주년기념 현대서예전 ‘오월의 書’전 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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