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듣다 -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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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듣다 - 맑음
  • 오경숙 기자
  • 승인 2012.11.0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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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모든 꽃이 이미 시들었는데

 

오직 국화만이 그 기운 온전하네.
특이한 향기 품고 홀로 뒤에 느긋하게
봄철의 화사한 꽃들과 앞 다투어 피지 않아
단 서리 내린 곳에 향기 풍기기 시작하고
찬 이슬 맺힐 때에 빛깔 더욱 곱다.
떨어진 꽃잎 씹으면 내 속 시원하기에
청려를 지팡이 삼아 울타리가를 돌아본다.

-서경덕 선생 시-
















 

어느 덧 절기가 바뀌고 곧 있으면 입동이 다가온다.
그렇게 들판에 흔하게 즐비하던 꽃들도 이젠 그 빛을 추위에 반납하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안녕을 고했다. 추수마저 해버린 들판은 까까머리가 되어, 추수한 농부의 마음은 지금쯤 부자가 되어 있겠지만 그저 바라만 보던 나는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秋收冬藏추수동장.......
이렇게 흘러가는 모든 것이 순리일진데 봄, 여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해 가을에 결실을 부실하게 맺고 있는 나로서는 그 순리에서 뭔가 허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이제는 산책을 하면 얼굴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가 되었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며 땅 속 곤충들과 새들을 놀라게 하는 고요한 아침이다. 그저 낙엽 색깔로 가득한 산길을 걸으며 걷고 있는데 어느 모퉁이 소복하게 핀 국화를 보았다.
모든 화려한 색이 사라지고 난 지금의 국화가 지닌 흰 빛은 더욱 더 맑고 깨끗한 흰 빛으로 얼굴을 시리게 하는 추위와 함께 나의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많은 꽃들이 경쟁하던 계절에 그저 묵묵히 잎만 지니고 있다가 늦은 가을, 아무도 찾지 않을 수도 있는 이러한 조용한 길모퉁이 이렇게나 아름답게 피다니.......

▲ 손지아
우울한 누군가에게 꽃이 되어주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누군가에게 길모퉁이에서 맞아주는
아직 어리고 미숙해 세상을 그저 경쟁하는 곳으로 이해하는 누군가에게
군자의 정신을 알려주는
그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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